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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마음책방

[아버지의 해방일지] by 정지아

by 개미마음 2024. 11. 24.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첫 문장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을 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빨치산의 딸, 빨갱이의 딸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갔을까?

사실 글은 그 고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이 그 시대를 살지 않아서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정지아작가의 말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정지아작가의 말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나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나이 들수록 잘 산 것 같지가 않다. 나는 오만했고 이기적이었으며 그래서 당연히 실수투성이였다. 신이 나를 젊은 날로 돌려보내준다 해도 나는 거부하겠다. 오만했던 청춘의 부끄러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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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더 멀리 더 높이. 그렇게 동동거리며 조바심치며 살다가 알게 되었다. 빨치산의 딸이므로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의 비극은 내 부모가 빨치산이라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내 비극의 출발이었다.


마지막 문장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허구든 사실이든 소설을 읽는 내내 난 부모에 대해 뭘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 낳아주고 길러줬다는 것 말고 부모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청소년기에는 공장노동자인 아빠를 부끄러워한 적도 있었다. 길에서 아빠를 만나면 피했다. 후회스럽다.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난 부끄러워했을까?

50이 넘었지만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 가까이 살면서 자주 가지고 않고 조금만 서운해도 연락도 안 한다.

언제 철들래? 늘 마음뿐이다.


밑줄 친 문장

p138.

잘 죽었다고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과 아버지는 어떻게 술을 마시며 살아온 것일까? 들을 수 없는 답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실수투성이인 인간이 싫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관계를 맺지 않았다. 사람에게 늘 뒤통수 맞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인지도 몰랐다.

p195.

사진과 오늘 사이에 놓인 시간이 무겁게 압축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p198.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 다시는 눈 뜰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p201.

타인의 눈물이 가문 날의 태양 볕처럼 내 마음에 가득 차오른 습기를 불태웠다.

p231.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p249.

작은아버지가 풀썩 주저앉으며 아버지의 유골을 끌어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아홉 살에 어긋난 형제가 칠십년 가까이 지나 부둥켜안고 있었다.

p252.

아버지는 백운산에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 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옥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습게도 '홍반장'이란 영화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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