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4
인생이란 얼마나 짧은 것인가? 또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는 것 아닌가?
단지 어리석은 나약함과 편안함 때문에, 친구에 대해 전혀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욕심,
친구에게 어떤 비밀도 숨기지 않으려는 욕심, 친구에게 어떠한 침착한 태도도 유지하지 않으려는 욕심,
단지 어린애같이 점잖지 못한 욕심 때문에, 지금 나는 자신의 에술을 완전하게 이해해 주고,
자신과 근접해 있고 자신에 필적하는 예술성을 지닌 유일한 친구,
이 유일한 친구를 놀라게 하고 부담스럽게 해서 침묵하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어린애같은 짓이었는가?
그렇게 클링조어는 벌 받는 것이다. 너무나도 늦게 말이다.
p58
나는 영속과 불멸인 척하지만, 실은 가장 덧없는 녀석, 가장 회의적인 녀석,
너희들 모두보다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더 많이 시달리는 가장 불쌍한 놈이로다.
p67~68
"도대체 우리가 운명을 바꿀 수 있소? 의지의 자유란 것이 존재하기나 하나요?
만일 그렇다면 점성술사 당신이 내 별을 다른 쪽으로 돌려놓을 수 있겠소?"
" 돌려놓지는 못하지요. 나는 다만 별을 해석할 뿐이오. 돌려놓는 일은 당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오.
의지의 자유는 있습니다. 그걸 마술이라고 하지요."
"모든 것은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이란 아무것도 없소. 마술은 착각을 피하게 해 주지요.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가장 나쁜 착각을 말입니다."
p93
에케 호모(이 사람을 보라),
이것이 인간이라고 말세의 지치고, 탐욕스럽고, 거칠고, 천지하면서도 세련된 우리 인간,
죽어가는 죽고자하는 유럽인이라고,
동경함으로써 고상하게 되고, 악덕으로 인해 병들고,
자신의 몰락을 앎으로써 열광적으로 생기를 얻고,
발전을 준비함과 동시에 퇴보가 무르익는 똘똘 뭉친 열정이자 넌더리 나는 권태,
모르핀 중독자가 독에 중독되듯 운명과 고통에 중독된, 고독한,
내면적으로 약화된 태곳적의 파우스트이자 동시에 카라마조프, 동물이자 현자, 적나라하게 노출된,
명예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완전히 벌거벗은,
죽음을 죽이기 위해 죽음에 대해 어린아이가 느끼는 공포로 가득한 동시에
권태에 지쳐 죽음에 대한 준비를 끝낸 유럽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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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5월 카사카무사로 이사한 헤세는 후일 이사한 소감을
"여기에서 나는 남편도, 가장도 아니었다. 여기에서는 오직 나 혼자만이 집에 있었다."
권태롭고, 우울증에 걸린 40대 헤세가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난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왜진 읽으면서 나의 권태로움도 몰락의 기분도 같이 느꼈음을.....
8월도 다 타 버렸고, 9월도 빠르게 타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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