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나에게는 이 소설을 껴안을 힘이 있다.
여전히 생생한 고통과 질문으로 가득 찬 이 책을.
사실 부커상 수상작이라고 했을 때 어두워 보여 읽고 싶지 않았다.
한강 작가도 알지 못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수상 후 '채식주의자'에 대해 김창완님과 한강작가가 얘기하는 영상을 보면서 한강 작가에 대해 알고 싶어졌고, 책도 읽고 싶어졌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볼까하다가 "노벨문학상 받은 작가 책 소장하고 싶어 구매했다"는 지인의 말이 생각나 나도 구매를 했다. 그리고 읽어 내려갔다.
쉽게 읽혔고 난 상처받은 두 자매에 깊은 공감을 했다.
어제 지인과 만나 '채식주의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저의 짧은 지식으로 아주 단순하게 어릴 때 받았던 폭력과 상처가 성인이 돼서도 이어지는 현상으로 얘기했다.
그런데 지인이 인문학지식으로 바라본 '채식주의자' 리뷰 영상을 공유하며 집에 가서 한번 보라고 했다.
오늘 그 영상을 보면서 나는 정말 얄팍한 지식으로 이 책을 바라보고 있구나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책이란 작가의 시선보다 각자의 시선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리뷰에서 에코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했는데 에코페미니즘이 뭔지 몰라 찾아봤다.
에코페미니즘은 페미니즘에 생태주의를 결합한 사상이라고 한다. 사회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여성은 남성들에게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동일시한다고 한다.
그래서 영혜는 나무가 되려고 했던 걸까?
채식주의자
남편이 바라본 영혜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시작한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 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 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이 글에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그려졌다. 평범하지만 절대로 같이 할 수 없음을.
영혜는 채식을 하기 시작하면서 늘 꿈을 꾼다고 했다. 5분 이상 잠을 잘 수 없다고.
야위어가는 영혜를 신랑은 친정부모님과 처형에게 전화로 알린다. 하지만 소용없다.
영혜는 결혼 전부터 브래지어를 잘하지 않았다. 채식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아예 하지 않는다.
신랑 직장 부부동반 모임에서도 음식을 먹지 않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자신이 추진하던 업무가 잘 풀리면서 그 사건은 직장에서 잊혔다.
사건은 친정식구들이 모인 처형의 집들이에서 일어난다.
신랑은 채식하는 영혜가 바뀔 거라 예상하고 갔지만, 사태은 이혼으로 치닫게 된다.
영혜의 아빠는 고기를 먹지 않은 딸에게 탕수육을 먹이려 했으나 거부하는 영혜의 뺨을 때리고 강제로 입에 탕수육을 밀어 넣는다. 식구들이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영혜는 다 토하고 결국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한다.
영혜는 어릴 적 키우던 개가 자신의 다리를 물었다는 이유로 아빠가 오토바이에 매달고 끌고 다니다면서 죽이는 장면과 그 개를 끊여 다리가 빨리 나으려면 먹어야 한다고 해서 밥까지 말아 한 그릇 먹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한 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 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 쉬게 할 수 없어."
몽고반점
몽고반점은 형부의 이야기이다.
형부는 예술가이다. 영혜의 언니 인혜는 화장품 가게를 운영한다. 그 수입으로 살아간다.
형부는 영혜에게 몽고반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예술을 실현하고자 한다.
여자와 남자의 몸에 꽃과 나무를 패인팅 하고 성교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일이다.
이혼 후 혼자 사는 영혜는 형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영상을 완성한다.
하지만, 인혜가 영상을 보게 되고 두 사람을 경찰에 신고한다.
신랑은 정신병원에 들어가지 않았고 영혜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몽고반점이 어떤 뜻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몽고반점은 일반적으로 아기의 엉덩이, 등, 다리에 주로 분포하는 푸른색 반점을 의미한다. 배아 발생 초기 표피로 이동하던 멜라닌 세포가 진피에 머물러 생긴 자국이다.
그래서 몽고반점이 시발점이 되어 꽃을 피우는 장면을 영혜의 몸에 그리고 인간의 탄생을 실현하는 성교를 가졌던 것일까?
이해해 보려 했지만, 이 일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사람이 - 강제로 고기를 먹이는 부모, 그것을 방관한 남편이나 형제자매까지도 - 철저한 타인, 혹은 적이었을 것이다. 지금 그녀가 다시 깨어난다 한들 그 상황이 변해 있을 리는 없다."
우리는 모두 타인인 걸까?
나무 불꽃
인혜의 삶이 그려진다. 영혜와 달리 자신의 얘기를 한다.
그리고 인혜가 바라본 영혜와 신랑의 이야기가 있다.
인혜는 화장품 가게를 찾은 신랑의 힘겨운 모습을 보고 자신의 힘으로 그를 쉬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이 쉬고 싶었다는 사실을.
"열아홉살에 집을 떠난 뒤 누구의 힘도 빌지 않고 서울 생활을 헤쳐 나온 자신의 뒷모습을, 지친 그를 통해 그저 비춰보았던 것뿐 아닐까."
인혜는 영혜보다 네 살이 많다.
어릴 적 술을 먹으면 늘 손찌검을 했던 아버지에게 늘 맞는 쪽은 영혜였다고 한다.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영혜는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고 인혜는 숲이 무서워 집에 돌아가고 싶어 했다.
간신히 숲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차를 얻어 타고 돌아올 때 영혜는 기뻐하지 않았고 인혜는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했다.
"아버지의 손찌검은 유독 영혜를 향한 것이었다. 영호야 맞은 만큼 동네 아이들을 패주고 다니는 녀석이었으니 괴로움이 덜했을 것이고, 그녀 자신은 지친 어머니 대신 술국을 끓여주는 맏딸이었으니 아버지도 알게 모르게 그녀에게만은 조심스러워했다. 온순하나 고지식해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던 영혜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고, 다만 그 모든 것을 뼛속까지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안다. 그때 맏딸로서 실천했던 자신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비겁함이었다는 것을. 다만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타인일 수밖에 없다는 형부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인혜도 잠을 자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자신의 삶을 오로지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인혜는 오직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금 그녀가 남모르게 겪고 있는 고통과 불면을 영혜는 오래전에, 보토의 사람들보다 빠른 속력으로 통과해,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간 걸까. 그러던 어느 찰나 일상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끈을 놓아버린 걸까. 잠을 이루지 못한 지난 석 달 동안 그녀는 이따금 혼란 속에서 생각해 왔다. 지우가 아니라면 - 그 애가 지워준 책임이 아니라면 - 자신 역시 그 끈을 놓쳐버릴지도 모른다고."
"그와 영혜가 그렇게 경계를 뚫고 달려 나가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모래산처럼 허물어뜨리지 않았다면, 무너졌을 사람을 바로 그녀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다시 무너졌다면 돌아오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다만 기적처럼 고통이 멈추는 순간은 웃고 난 다음이다."
신랑과 그 일이 있은 후 영혜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해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인혜는 영혜를 다른 정신병원에 보낸다.
그곳에서 영혜는 더 심해져서 아예 먹으려 하지 않고 나무가 되고 싶다고 한다.
나무는 태양과 물만 있으면 된다고.
억지로 밥을 먹이려는 병원에서 영혜를 내리고 나오면서 인혜는 꿈인지 모른다고 얘기한다.
".......어쩌면 꿈인지 몰라."
"언제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그때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어렸을 때 상처가 없다고 해도 누구나 살면서 힘든 일이 있다.
자식이 있어 살아갈 용기를 얻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인혜의 삶은 좀 이해할 수 있었다.
인혜는 사건 이후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됐는지?
막을 수는 없었는지?
한강 작가는 책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해보다 이 책은 질문 투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영혜도 아이가 있었으면 인혜처럼 참아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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